오병철

193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검도를 하면 정신이 집중된다는 얘기를 접하고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1956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고, 검도부 동아리를 결성했다. 1964년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를 배후 주동했다는 혐의로 제1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몇 달 동안 고초를 겪다 공소취하로 풀려났다. 졸업 후 1968년 수원 비봉농고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대전교도소에서 20년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88년 6월 6.29선언 1주년 때 양심수 대사면으로 석방됐다. 1991년 신촌에 검도 수련관 '제검관'을 개관했다. 군사문화가 남아있던 당시 칼을 제어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1996년 수련관을 공덕으로 이전하며,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담아 '제심관'으로 재개관 했다. 검우(劍友)들의 사랑방 공간인 제심관의 관장으로 지금도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1994년 인권운동사랑방의 단체명을 써준 인연이 있다. 

직녀에게

1988  |  68×61.5cm  |  옥중作

* 문병란의 시, 「직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