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47년 경성경제전문학교 재학 중, 미군정의 단일 국립대 설립 계획에 반대해 투쟁하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공업신문사 기자, 중학교 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입대해 원산에서 인민군에 편입됐다. 1957년에는 개성의 송도정치경제대학을 졸업하고 1958년부터 평양고등상업전문학교 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임했다. 대남 공작원 교육을 받고 1963년 남파되었고 1967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1년의 수감생활 끝에 1988년 특사로 출소했다. 대전교도소에서 신영복 등과 함께 이구영 선생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웠으며, 출소 후 충청남도미술대전, 전라북도미술대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오랜 수감생활과 혹독한 고문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북에 남은 가족들이 겪을 고초를 생각하며 사상전향을 거부했다. 출소 이후에도 힘든 시간을 보내며 통일 조국을 염원했지만 2012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겸애하면 화평해지고 차별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 연도미상 | 128×32cm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 1991 | 131×35cm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다 | 연도미상 | 135×35cm
소나무 같이 꿋꿋한 마음 난초 같은 유연한 성품 | 1985 | 66×24cm | 옥중作
학문은 부지런히 힘쓰면 힘쓸수록 진보한다 | 연도미상 | 139×35.5cm
착한 것을 행하면 반드시 흥한다 | 연도미상 | 45×35cm
현명한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 | 연도미상 | 75×22.5cm
* 만리장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경 주변에 전쟁이 끊이지 않자, 당 태종은 이세적을 척사를 보내 적과 화친을 맺게 하고,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 화친에 성공하고 돌아온 이세적에서 '人賢長城(인현장성)' 네 글자로 공을 치하했다. 철벽같은 만리장성으로도 얻지 못한 국경의 평화를 한 사람이 이루어내었다는 뜻으로 '사람'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
연도미상 | 139×35cm
* 「서경(書經)」의 '人心惟危 道心惟徵 惟精惟一 允執厥中(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를 지키려는 마음은 극히 희미한 것이니 오직 정신을 하나로 모아 진실로 그 중정을 잡아야 한다)'에서 유래한 말로 ' 마음을 모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또는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마땅하고 떳떳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뜻
온화한 정신은 봄과 같고 맑은 절개는 가을과 같다 | 1989 | 134×35cm